카테고리 없음2012. 2. 2. 11:19
2012년 2월 1일. 서울의 낮기온 -12였던 하루였지만, 이렇게 설레고 재미난 자원활동을 해본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해 연말, 고등학교 시절 일본어 선생님께서 저와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셔서 "너거 후배들이 서울로 수학여행 갈텐데 코스를 좀 짜봐라". 내용인즉 늘 일본으로 향하던 수학여행을(외국어고등학교 일본어과 인지라) 올해는 방사능위험을 이유로 국내 체험학습을 가기로 결정했고, 교육청에서도 이런저런 지침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나름 다정다감한 선생님께서는 후배들을 체험학습 업체에 맡기기 싫어서, 19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름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저희에게 서울 일정을 맡기기로 하신거죠. 

연락받은 친구녀석들이 이미 KYC회원이고 서울KYC의 평화길라잡이, 궁궐길라잡이, 도성길라잡이 활동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서울KYC자원활동에 맞추어 일정을 계획하는데 동의했고 제가 안내를 맡기로 했습니다. 창덕궁 후원을 보여 주고 싶었지만 일부가 이미 부모님들과 다녀온적 있고, 그것까지 다 보면 놀이공원 가는 데 차질이 생긴다는 후배들의 저항때문에 궁궐은 접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2월1일(수) 하루만 "서울 역사박물관 - 일본대사관앞 수요집회 - 서대문 형무소 - 용산전쟁기념관"을 다녀가는 것으로 정해 졌습니다.

서울역사박물관


경남양산에서는 일찍이 경험 한적 없는 수십년만의 강추위에, 제법 눈도 내린 뒤라서 움직이는 것이 정말 만만치 않았습니다. 
후배들을 처음만나서 들은 말은 인사가 아니라 "선배님이 따뜻한 스파 같은 데 데꼬 가줘요, 우리는 요양이 필요해요." 였습니다. 물론 대답은 뻔합니다. "촌놈들. 서울에 그런게 있을리 없자나요"  

서울역사박물관에 전시된 전체 서울의 모형도 보고 아이들을 퍼갈 듯한 포크레인삽이 이곳에 전시된 이유도 귀동냥 했습니다.
추위에 떨고 있을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과 이순신 동상을 확인한다는 핑계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일본대사관 앞까지는 걸어서 갔습니다.




 
매서운 추위속의 1007번째의 수요집회는 유난히 고등학생들이 많았습니다.
"그 옆에 설 수 있어야 인권교육이 된다"고 우기는 선배 때문에 달달 떨기는 했지만, 또래의 고등학생들이 수요집회를 진행하고 율동까지 하는 모습에 적지않은 경외감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자유발언을 했던 후배가 저에게 "선배 눈물이 나요" 한마디 해준 덕택에... 에 그게... 좀 많이 좋았습니다. 

서대문형무소 수형기록표


서대문형무소를 거쳐간 독립운동가들과 민주화인사들의 흔적을 체감하는 것은, 확실히 쇼윈도 안의 역사를 나의 현실로 받아들이게 해줍니다. 
후배들의 표정에는 감방안의 풍경은 상상 해봤지만, 칸칸이 나뉘어져 있는 격벽장이나 사형장의 모습은 떠 올려 본 적이 없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리고 김근태 선배와 고문기술자의 이야기, 청년 전태일과 이소선여사의 이야기들이 바로 어제의 일인 것에 놀라워 하는 눈치였습니다.
 



(전쟁기념관 한국전쟁실)

말을 꺼내기도 전애 "이름이 왜 전쟁기념관이에요, 추모관이나 역사관도 아니고..." 후배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반가운 질문으로 시작해서 용산전쟁기념관앞 주차장에 내렸습니다.
전쟁의 역사 특히 한국전쟁은 이해와 성찰이 필요한 부분이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아이들은 "만약에 이승만이 다른 결정을 했더라면" 하는 상상으로 이어집니다.  
언 뜻 보기엔 무기 전시장과 다름없는, 평화와 인권으로 풀어가기엔 너무 어려운 전쟁기념관에서 비폭력의 중요함과 평화의 의지를 다져 주신 김서정(평화길라잡이 4기) 선생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저질체력 이었지만, 총기 있게 따라준 후배님들에게도 고맙습니다. 


평화길라잡이로 활동한지 4년째, 아마도 저에게 가장 오래 기억이 남을 만한 두번째 사건이 될겁니다. 
Posted by 버거비
카테고리 없음2011. 2. 26. 05:06
아랍의 민주화운동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대략 난감한 상상이 떠올랐다.

상상의 끄트머리 부터 말하자면, 
현재의 리비아 사태가 장기화 되거나 산유국인 아랍권의 다른 나라가 하나만 더 민주화운동이 일어나면 북한 정권의 붕괴가 가속화 될꺼라는 거다. 여기서 장기화의 의미는 모내기 철까지 원유(油)가격이 배럴당 110달러 이상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정도로 가정하자. 



이미 미디어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이런저런 말들을 쏟아 내고 있지만, 북한의 붕괴는 아랍권 처럼 대규모 시위나 주민들과 독재정권과의 대결 형태로 진행되지는 않을 것 같다. 아무래도 사상교육에 대한 철두철미함과 겨우 물새는 정도의 (내부.외부)의사소통 도구와 환경 탓으로 진압이 될만한 소규모 분란이 있는 정도가 아닐까.

하지만 미군(US Army)의 가장 강력한 적이 유(油)가인 것 마냥, 북한의 독재정권을 붕괴 시킬 가장 강력한 민주화 운동이 유(油)가 일꺼라고 생각한다. 올해의 하반기, 추수 이후에 곡물가격 상승이 정말 걱정이다.  
석유는 비료나 운송등의 이유로 곡물가격에 큰 압박 요인이 분명하다. 또 물부족 국가(한반도)인 우리나라가 물부족 사태로 인한 곤란을 덜 겪는 이유는 막대한 농업용수를 절약할 만큼에 곡물을 수입하기 때문이다. 곡물의 수입은 물 수입이나 마찬가지라는 소리다. 

유(油)가의 고공행진은 북한이 아무리 배째라고 덤벼도 예전만큼의 식량지원이 이루어지기 힘든 현실이 될꺼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바라는 중국이나 오일(oil) 중독자 미국이야  아랍의 빠른 안정을 바라겠지만, 쿠데타도 아니고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에 개입할 명분을 찾기도 어려울 테고, 자칫 잘 못 건드렸다가는 아랍전체의 반감을 살테니 조마조마 할 수 밖에 없을 꺼다. 화석에너지로 배를 불려온 러시아야 미국이 콘트롤 할 수 없는 산유국이 늘어 날수록 내심 반길테니 겨우 외교적 립서비스 정도하면서 자신들이 실세가 되기 위한 타이밍을 찾겠지...
대략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이 워낙에 세속적인지라 무얼 바라기 힘든 현실이 될 것 같다. 


북한 주민들은 폭설을 어떻게 견디고 있을 까? 구제역으로 죽는 돼지가 몇마리나 있을 까? 
배고픔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한반도의 북쪽은 기후변화와 같은 전지구적인 문제에 대한 대책, 그러니깐 식량, 에너지, 물의 위기를 관리할 능력이 없다. 
이제 아랍의 민주화 운동이 다른 형태로 북한 붕괴의 도화선에 불씨를 댕긴거다.

뭘 해 먹을 것(?)도 없고 책임 질래야 능력도 안되는 고위층 이탈이 가속화 되고, 북한 정권의 권력 교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꺼다. 
아래로 부터의 민주화 혁명이 아니라, 위에서 부터 무너져 내리면서 근대화 초기 처럼 사회가 공황상태에 빠질 것 같다.
유(油)가의 고공행진이 길어 지면 질 수록 북한 정권의 붕괴는 빨리 다가 올 것 이다. 10년?? 아니면 5년??
여하튼 희망은 서로가 감당할 수 있을 무렵에 그런 시기가 왔으면 좋으련만.. 

토목을 위한 토목에 의한 대통령 MB님이 통일세를 걷어 미래를 준비하자고 하셨다.
과연 MB님 다운 발상이다. 
지금 까지의 행태로 봐서는 통일세로 우리말사전을 북한이랑 공동으로 편찬하자는 발상을 하시지는 않았을 테고, 북쪽의 기반시설이 부족하니 사회간접자본 확충한다고 나서면 그거 죄다 토목 건설족의 일감이 아닌가..
퇴임 이후에도 공사 수주를 걱정하는 모습이 대견하기 까지 하다.

MB님이 정말로 대통령인지 건설회사에서 파견한 CEO인지 헷갈리기는 하지만, 통일세도 필요하고 사회간접자본도 필요하다는 거는 옳은 소리다.
헌법으로 명시한 국가의 사명을 위해 우리는 준비 해놓은 게 너무 없다. 준비가 태부족한 상황에서 예상하지 못한 북한의 붕괴가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무얼 할 수 있을까?
따뜻한 시선으로 북한 주민들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연다고 배가 부를 수 있을 까? 미군과 만들어 놓은 작전 계획이 서로간의 화해를 도와 줄건까?

작지만 보험에라도 가입하자. 통일세를 사보험이라고 여기고 만일의 사태를 준비하는 기금을 만들어 보자. 
(신화속의 왕릉에 금을 쌓아 둔것도 아니고, 해외 공사 현장마다 북한 군인들 끼워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물론 우리가 가입한 보험 때문에 광고 시장이 버티고, 고액연봉의 보험 영업사원들이 생기는 것도 알지만.. 뭐 별 수 있나...

예상하지 못한 북한 정권 붕괴로, 닥쳐올 위기의 시나리오를 해피엔딩으로 반전 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비젼과 준비된 역량이 모범 답안이다.  
우리 사회의 내부의 격차도, 남과 북의 격차도 더욱 줄어 들어 서로를 버거워 하질 않을 역량을 키우고. 
정말로 통일 이후의 한반도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려서, 불안해 하고 미더워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설득을 시작해야 되지 않겠나!

2011년은 어째 좀 늦은 감이 있다.
Posted by 버거비
카테고리 없음2010. 11. 9. 14:45
개량적인 사실은 아니고 경험에 비롯된 이야기 임을 우선 밝히고서..

20~30대의  사회경제적 어려움을 해소 하는 정책을 모니터하고 개발하는 것이 저의 소임인지라
제법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 했습니다. (특히 올해는 20대들이 많았죠.)
20대들을 살피는 동안 노동운동에 대해 20대들이 가지고 있는 편향적인 시선을 많이 느꼈습니다.
일부는 노동운동을 마치,"루저들의 악다구니"처럼 취급 해 버리는... (그런 태도 솔직히 재수 없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미래를 설계하고 꿈에 도전할 수 없는 시절이니, 그러한 정서가 20대에 한 한것은 아닐것입니다.

http://cafe.daum.net/skyc-peace2u

엊그제 다들 확인하신 것 처럼
서대문형무소의 새로 바뀐 전시물에는 사회주의 계열에 독립운동가들을 소개하고 있고,
그들중 상당수는 노동운동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경성트로이카나 이재유, 이현상에 대해서는 이름만 알뿐 워낙에 배경지식이 모자라서요.
집으로 돌아와서 이재유라는 분에 대해서 검색을 제법 해 봤습니다. 대단하더군요)

그래서 말인데
"노동운동이 독립운동이고, 독립운동이 인권운동이요 민주화로 가는 과정"이었다는
이해가 분명히 있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안내하는 평화길라잡이가 그런 이해를 도와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버거비